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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about hope in propolis.
Talk about hope in propolis.
대한민국의 프로폴리스는 글로벌 시장의 절대 강자다. 서울프로폴리스가 무알콜·수용성 추출기술(WEEP공법)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갖췄다. 이승완 대표이사가 앞장서 10여년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는 3가지 키워드가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믿음, 일에 대한 믿음이 그 것이다.
선(善)한 눈빛의 이 대표가 "우리나라에 없는 아이템에 도전해보고 싶어 천연항생물질인 프로폴리스 개발에 뛰어들었다"며 "연구개발(R&D)에 있어 세계적으로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낼 때는 강단이 엿보였다. 등산할 때 이미 만들어진 '등정로' 대신 '등로로'로 오른다는 이 대표의 도전과 개척 정신은 서울프로폴리스에서 만든 성분이 화장품·건강음료·동물약품 같은 건강기능성 상품의 소재로 폭넓게 활용되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더 힘을 쏟겠다"며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고향의 젊은이와 출향인이 멘티-멘토 관계로 이어져 밝은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깊은 고향 사랑을 밝혔다.
-세계 프로폴리스 산업을 이끄는 리딩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회사인가?
▶2003년 창업했다. 원자력연구원 제2호 연구소기업이다. 프로폴리스는 면역력 증가. 노화방지(항균·항염증) 등에 효과가 크다. 하지만 물에 잘 녹지 않는데다 특유의 향으로 인해 여성이나 어린이들의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WEEP공법으로 신소재를 개발했다. 회사 자체적으로는 15개 제품을 개발해 판매 중이다. 또 롯데·교원 더오름·동원 피엔에프등 국내 기업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우리나라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알로에였다. 창업 멤버인데 성공하고 나니 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세계 여기 저곳을 다녀 보니 프로폴리스가 눈에 확 띄더라. 한국에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뛰어 들었는데 한 동안 굉장히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먼저 우리 국민에게 생소했다. 서울프로폴리스라는 명함을 주면 서울경찰청에서 무슨 신물질을 만드느냐는 말을 듣고는 했다, 하. 10년 고생하면 되지 않겠나 했는데 더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인·허가도 문제였다. 마침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동물사료에 화학 항생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내성이 생기지 않는 천연 항생제인 프로폴리스 어류·동물용 항생제를 만들어 중소기업청에서 기술혁신개발사업에 선정되면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퍼진 뒤 프로폴리스의 면역력이 부각되면서 날개를 달았으니 세상 일 참 모르겠더라.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외부의 균으로부터 벌집과 애벌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물질. 뛰어난 항암·항균·항산화 효과뿐 아니라 면역력까지 키워주는 천연 항생제로서 갈수록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품 종류가 많고 추출·정제법이 각양각색이지만 이 대표는 수용성 무알콜 추출물을 더해 신(新)산업의 길을 열었다.
계기가 있었다. 2002년 가을 일본 도쿄역 인근 서점 프로폴리스 코너에서 수십 권의 관련 책을 뒤질 때였다. 수용성 프로폴리스 추출 공법을 중국 양봉협회 간부가 개발했다는 내용을 접했지만 로열티 요구에 기술 개발로 눈을 돌렸다. 결국 2017년에 수용성 칵테일 공법으로 3세대를 선보이는 등 국내외 프로폴리스 시장을 선도하는 결실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4세대 기술 초임계 칵테일 공법을 이용해 충남대학교 병원과 함께 4년간 공동 연구한 '프로폴리스 노인성 인지기능에 관한 연구'를 내놓았다. 2027년 매출 500억 원이 단기 목표다.
-서울 프로폴리스만의 상품은?
▶'프로비'다. 프로폴리스를 접목한 '프로비 수용성 프로폴리스'와 치약·비누스프레이·휴대용 트리오 스틱·프로폴리스 꿀·동물용 프로폴리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지만 완제품과 더불어 OEM, ODM 제품, 원료까지 내놓고 있다.
-삶과 경영 철학은?
▶저는 '등로주의자'다. 알파니스트들이 등반을 할 때 새 길을 개척하거나 기존의 구간(등정주의)을 오르는 선택을 한다는 데 저만의 길을 찾았다. 도전과 모험에 내 몸을 던지려고 했다. 고통스러운 여정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나.
-길을 흩트리지 말고 걸어가라는 서산대사의 답설가(踏雪歌)'가 떠오른다.
▶어떻게 비교 할 수 있겠나. 다만, 아무런 발자국도 없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해외 진출 구상은?
▶오늘도 직원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갔다. 저희 제품이 터키·미국, 특히 베트남에서 인기가 높다. 수출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데 정부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재 양성과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인 이유는?
▶사실 인재 확보는 굉장히 중요하다. 과천 지식정보센터라는 곳이 있는 데 거기에 사무실을 마련해 인재 영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힘든 시기를 견디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적게나마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전에서 고향모임은 자주 갖나?
▶대전 의성향우회 초대 회장, 경남·북 출향 오피니언 리더로 구성된 대경리더스포럼 회장을 지냈다. 출향인의 친목은 물론 정보교류와 발전에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다. 또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대전과 고향을 위해서도 무어라도 해야지 않겠나.
-고향 후배와 향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학생 창업 멘토링을 한 지 9년이 됐다. 57명 중 6명이 창업 했으니 상당히 많이 한 거다. 젊은 친구들의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 고향인 의성이 좀 낙후되고, 소멸지역이라고 하는 데 마늘이 유명하지 않나. 관광지도 개발하고…. 그런 것들을 연계해 창업을 하고 도전에 나서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향우와 고향 젊은이들을 멘티-멘토 관계로 엮어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승완 대표는 누구
선조들이 6백년 넘게 의성 안계면에서 뿌리를 두고 살았다. 시조는 이성계 재종 형인 이연계(李蓮桂)로서 조선 개국을 반대하여 다인면으로 와서 본관을 전주 이 씨에서 대흥 이 씨로 바꾸었다.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관서화학화장품제조소를 운영하다가 종가를 지키라는 조부의 말씀에 따라 귀향을 해 40년간 서울약방을 운영하였다. 종가집 22대 종손인 이승완 대표가 회사명에 서울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정신과 뜻이 담겨져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재선 국회의원과 신민당 경북도당위원장을 역임한 우홍구 씨가 큰 자형이다.
대구 협성고·건국대 응용생물화학과에서 수학하고 서울대 보건대학원 H.P.M 동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벤처산업의 산실이자 허브인 대덕이노폴리스 벤처협회 9대 회장,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세계프로폴리스 사이언스 포럼 회장으로서 세계 110개국이 참가한 세계 양봉인 EXPO '2015년 대전 세계양봉대회' 유치와 성공 개최의 1등 공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뽑혔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증하는 한국대표 브랜드 '브랜드K'를 획득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 입점해있다. 서울프로폴리스 제품은 해외 정상들의 선물용으로도 사랑을 받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수연구기업'으로 선정됐으며, 2021년에는 '제27회 대전시경제과학 대상', 대학생 창업과 벤처생태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올해의 대덕인상'을 받았다. 수필가로도 유명하다. 저서로 '프로폴리스와 독, 알로에 신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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